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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영화 리뷰: 땅 밑에 묻힌 진실이 꿈틀거릴 때

ThrillHer 2025. 7. 19. 08:00

 

영화파묘포스터

 

 

영화 정보

  • 감독: 장재현
  • 출연: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외
  •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
  • 러닝타임: 약 134분
  • 개봉일: 2024년

 

파묘란?

 

‘파묘(破墓)’란 말 그대로 ‘무덤을 파헤친다’는 뜻입니다.

 

고인을 모신 무덤을 다시 열고 그 유해를 옮기는 행위.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는 조상의 기운을 다시 바꾸거나,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제거하는 굉장히 민감하고도 전통적인 의식입니다.

 

영화 ‘파묘’는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오컬트적 공포와 결합시켜 한 편의 독특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완성시킵니다.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두운 터널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기분. 그것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끌림과 함께 말이죠.

 

 

감상평

 

일본의 쇠말뚝과 민속적 기억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의 기를 끊기 위해 전국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그것이 명당의 정기를 흩뜨리고, 산천의 생기를 빼앗기 위한 술수였다는 이야기.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가 없었지만, 영화 ‘파묘’를 보면서 그 기억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무덤을 파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속, 역사적 맥락, 풍수지리와 같은 한국만의 전통적 요소들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그 모든 것이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김고은의 연기: 무속의 리얼리티

 

사실 저는 굿이나 무속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김고은 배우의 연기를 보며, ‘굿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더군요.

 

손끝 하나, 목소리 떨림 하나까지도 감정이 실려 있어, 굿 장면이 단순한 연기를 넘어선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굿판이 열리는 장면에서는 극장의 공기가 바뀝니다. 스크린 속 장면이 아닌, 바로 옆에서 누군가 진짜로 제령을 하는 듯한 느낌. 그만큼 배우와 연출의 합이 뛰어난 장면이었습니다.

 

 

숨은 디테일: 영화는 장면마다 말을 걸고 있다

 

이 영화를 두 번째, 세 번째 보면 보일 수 있는 디테일이 정말 많습니다.

 

GA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캐릭터들의 이름 구성, 차량 번호, 지명이나 간판에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내며 ‘파묘 디코딩’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의 이름,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차량 번호가 실제 사건 날짜를 암시하고 있다거나, 간판의 글자 하나하나가 굿판에서 쓰이는 도구들과 연결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은 이러한 디테일을 장면마다 정성스럽게 심어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추론하고 해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저 장면은 무슨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되죠.

 

결국 저도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보지 않고는 못 배길지도 모릅니다. 장면 하나하나에 숨은 의미가 많기 때문에 두 번째 감상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세계관: 사바하 이후 진화한 공포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 이어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세계관이 한층 더 깊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악령 퇴치’가 아닙니다. 인간의 믿음, 전통 속에서 잊힌 존재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믿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이중성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늘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건드립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전통과 금기의 세계, 그것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현실로 떠오릅니다.

 

 

한국형 오컬트의 진화

 

‘파묘’는 단지 무서운 영화로 끝나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는 역사, 믿음, 민속적 기억, 디테일의 미학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무서운 장면 몇 개로 관객을 놀라게 하려는 B급 공포가 아닌, 진정으로 ‘이야기를 품은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큰 축복입니다. 앞으로도 장재현 감독님 같은 창작자들이 많아지길, 그리고 한국형 오컬트 영화가 더욱 발전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